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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웨어 3판

톰 드마르코, 티모시 리스터 지음


인적 자원 관리

관리자로서 우리 대다수는 한 가지 실수에 취약하다. 바로 사람을 조립식 부품인 양 관리하는 성향이다. 관리자들이 이런 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명백하다. 관리자가 되기까지 거쳐온 과정을 떠올려 보라. 실무자로서, 즉 기술자나 개발자로서, 일을 잘하면 우리는 좋은 관리자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일을 잘하려면 자원을 모듈로 잘 나눠야 한다. 소프트웨어 루틴이든, 회로 모듈이든, 기타 업무 단위든 말이다. 우리는 블랙박스 특성이 드러나도록 모듈을 구성한다. 즉 모듈 각각의 내부적인 특이성은 무시해도 괜찮다. 모듈은 표준 인터페이스로 소통하도록 설계되니까.

 이 같은 모듈 방식에 오랫동안 익숙한 상태에서 갓 승진한 관리자라면 당연히 인적 자원도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여 든다. 불행히도 이런 시도는 통하지 않는다.


초과근무는 소용없다.

직장인에게 초과 근무란 순진무구한 관리자의 허황된 망상이다. 물론 월요일 기한을 맞추려 토요일 몇 시간 정도 더 일하는 경우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과 근무 뒤에는 뒤쳐진 일상을 따라잡으려 그만큼 '업무와 무관한 활동'으로 보내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이득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 스페인식 경영이론('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치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를 축적하는 길은 땅이든 사람이든 좀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는 방법뿐이다')에 물든 관리자는 무급 초과 근무를 보지 못하듯 미달 근무도 보지 못한다. 근무일지에 시간이 남았다고 기록하는 직원은 한 명도 없다. 남는 시간은 전화나 담소나 휴식에 쓴다. 40시간을 쉬지 않고, 그것도 창의적인 지적 업무에 필요한 집중력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초과 근무는 전력질주와 같다. 마라톤에서 몇백 미터를 남겨두고 조금이라도 기력이 남은 선수들에게는 말이 되지만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선수에게는 시간 낭비다. 팀원들이 전력질주하게 너무 밀어 부치면 관리자는 오히려 신뢰를 잃는다. 유능한 팀원들은 이미 다 격어봤다. 4월까지 끝내야 한다고 열창하는 동안 그들은 입 다물고 조용히 앉아 속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초과 근무 시간만큼 보상으로 적절히 쉬며 결과적으로는 매주 40시간을 일한다. 유능한 사람은 이렇게 한다. 나머지는 일중독자들 이다.


일중독자들

일중독자들은 보상 없이 초과 근무를 한다. 효율이 떨어져도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붓는다. 적당한 압력을 가하면 사생활을 망쳐가면서라도 미친 듯이 일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아무리 헌신적인 일중독자라도 언젠가는 다음 메세지를 받는다. 


진정해, 넌 잘하고 있어

시간 내에 네가 원하는 걸 다 이룰 수는 없는거야

그 경계에 선 오늘밤은 낭만적이지만 말이야

언제쯤이면 깨달을 거니... 비엔나가 널 기다리잖아 

 

이런 메세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일중독자는 프로젝트에서 영원히 손을 뗀다. (가족, 사랑, 가정생활, 젊음이라는) 더 중요한 가치를 (일이라는) 덜 중요한 가치 때문에 희생했다는 깨달음은 굉장한 충격이다. 자신도 모르게 희생을 치러온 사람은 복수의 칼을 간다. 상사를 찾아가 앞으로는 지금처럼 일하지 않겠다고 침착하고 사려깊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사표를 던져버린다. 과로로 인한 소진의 한 형태다. 어쨌거나 프로젝트에서 그는 사라진다.

 일중독은 병이다. 알콜 중독처럼 소수의 불행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일중독은 감기와 비슷하다. 모두가 살면서 한 번씩 걸린다.  여기서 일중독을 언급하는 목적은 원인과 치료법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관리자로서 일중독 팀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라는, 좀 더 단순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일중독 팀원을 전형적인 스페인식 경영 이론으로 악착같이 착취하면 결국 그들을 잃는다. 아무리 절박하게 초과근무가 필요하더라도 팀원들의 사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일하게 두지는 말라. 초과 근무는 우수한 인력을 잃을 만큼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일중독이라는 주제를 넘어 의미 있는 생산성이라는 좀 더 복잡한 주제와도 연결된다.


생산성: 이기는 전투, 지는 전쟁

다음번에 누군가 생산성을 거론하면 그 사람이 '이직률'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유심히 들어보라. 십중팔구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글이 생산성을 논했지만 생산성과 연관지어 이직률을 언급하는 전문가는 단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직률을 배제하고 생산성을 논하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음은 생산성을 높이고자 회사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조치다. 


* 일하는 시간을 늘리도록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기계화 한다.

* 제품 질을 낮춰 타협한다.

* 업무 프로세스를 표준화 한다.


이런 조치를 취하면 당연히 업무가 따분하고 흥미가 떨어진다. 따라서 의욕적인 직원들이 좀 더 재미난 일을  찾아 떠날 위험이 높아진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이직률이라는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싶다면 이직률이라는 사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으면 생산성 '향상'으로 얻어지는 이익이 핵심 인력의 손실로 상쇄되어 버린다.

 대다수 회사들은 이직률 통계를 기록조차 하지 않는다. 숙련된 팀원 교체에 드는 비용을 파악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 생산성을 논의할 때마다 회사들은 이직이 존재하지 않는 듯, 아니면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듯이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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